
잠실의 롯데월드몰에는 아크 앤 북 이라는 서점이 있다. 앉아서 책 한권을 통째로 읽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곳이다. 오늘같은 여름 날 집에서 그 곳까지 십오분정도를 걸으면 얼굴에서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난 고전을 읽고 싶었다. 고전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어떤 가치를 갖고 있다. 나야 책과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이지만, 이왕 친해지기로 한 이상 그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모음이 있는 높은 칸 맨 왼쪽에 이 책이 있었다. 같은 칸에는 죄와 벌 같은 굵직한 책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다. 이런 명망높은 세계문학들을 건드린다는게 어쩌면 조금 우쭐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책은 쉽게 읽혔다. 예전에 가족 여행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베네치아였나), 그 곳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읽으니 더 생동감있게 느껴졌다. 유럽의 날씨와 자연은 정말 재수없을 정도로 쾌적하고 아름답다.
전쟁은 생각보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묘사되어있었다. 주인공 헨리 프레드릭과 일행들은 시종일관 먹을것과 마실것을 찾았고 (나보다 잘 먹고 다니는 것 같았다) 잔인한 장면이라곤 박격포에 다리가 날아간 병사 (이름을 까먹었다) 와 피를 흘리며 죽어간 캐서린 밖에 없었다.
캐서린의 죽음은 너무나도 무미건조하고, 색으로 비유하자면 회반죽색이었다. 입 안에 재를 한 웅큼 털어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허무하고 밋밋한 죽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캐서린의 사랑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웃음지었던 것 같은데… 책이 비극으로 끝이 나는걸 알면서도 내심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비극은 아니길 바랐다. 차라리 헨리가 죽었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 헨리의 세상이 캐서린의 죽음과 함께 멈춘 듯이 책은 그렇게 끝나고 만다.
전쟁의 비극에 대한 책이라기 보단, 사랑과 생명에 대한 실존적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사랑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느낄 수 있으며, 생명은 필연적으로 죽어야만 한다… 따위의 이야기들.
책 끝에 누군가가 해석한 글을 출판사에서 옮겨놓았는데 꽤나 인상적이었다. 배움이 느리고 관념을 혐오하는 헨리 프레드릭이 사랑과 죽음으로 세상을 이해해가는 과정에 대한 해설이었다. 나와 비슷했다. 나는 철학을 하지만 사실 그런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설령 존재한다 해도 그닥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 똑똑한 체 하는 사람들의 머릿싸움같다. 내 손에 만져지고, 귀에 들리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더 선명하고 가치있다.
나도 언젠간 헨리처럼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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